한밤중.
간간이 이는 잡념도
어둠에 부딪쳐 되돌아온다.
공도 다르지 않다.
텅 빈 운동장에 있거나
가파른 비탈 꼭대기에 있거나
해변에 있거나
공은 막막함에 포위되어 있다.
기울기나 충격에 따라
어디로든 굴러갈 수 있어도
매 한가지.
자유로워 보이는 공의 함정.
자유의 뒷모습은 외로움이다.
선수들 발길에 차여야
직성이 풀리는 공인가.
온몸으로 낚아챈 골키퍼의 품에
안기는 것도 잠시.
곧 발길에 튕겨나간다.
나무 꽃 풀잎도 공이다.
사람 말 짐승들
새 물고기도 공이다.
비바람과 땡볕, 폭설과 폭풍.
그리고 세파에 채여 휘청거릴 때
존재감은 확실하게 터져 나온다.
비오는 날 축구경기를 보다가
글 한 편 써본 적 있다.
‘저렇게 비가 퍼붓는데
사람들은 축구를 한다.
흙탕물에 엎어지기도 하고
뼛속을 뒤흔드는 괴성을 지르기도 한다.
물먹은 공은 잘 나가지도 않고
헛발질에 나자빠지기도 하지만
비 오거나 쨍쨍한 날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공놀이를 좋아한다.
생김새가 어디서부터 시작이며
어디가 끝인지를 알 수 없는 공.
작은 돌에 부딪쳐도 그 튀는 방향을
전혀 알 수 없는 공에 대하여
그 누구도 아무런 불평이 없다.
그냥 퉁기고 싶고, 지르고 싶은 것이다.
갑자기 나도 뻥뻥 지르고 싶다.
비구름 뚫고 저 높은 하늘까지
그저 냅다 지르고 싶다
태양이 움찔하도록.’
흠뻑 젖은 채 튕겨 다니는 공이
인생사와 다를 바 없다.
눈물범벅이 되거나
종종 호쾌한 웃음소리에 얻어터져야
후련해지곤 한다.
공.
안은 비어있을까.
眞空일까.
실은, 비어있는 게 아니다.
공으로 빽빽하기에
공은 존재한다.
건드리면 울림이 있는 이유다.
바위, 바다도 건드리면
울린다.
제트기 지나간 창공은
흰 줄로 울고 있다.
그 속을 보여주는 허공.
공.
‘공갈치지마!’
공에는 비수도 잠복해있다는 말.
갈피잡기 어려운 말.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말은
무서울 때가 있다.
공을 가지고 놀고 싶은 것은
무서움과 좀 친해지고 싶다는 것.
무서움에 면역되고 싶다는 것이다.
언제 부닥칠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죽음에도
조금씩 낯을 익히고 싶다는 것이다.
공.
햇살, 어쩔 줄 모르는 운동장.
구석에 있는 공을 툭, 차본다.
길지 않은 울림.
고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