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밑 제비집에는 사슴이 알을 품고 海底燕巢鹿抱卵
불 속 거미집에는 물고기가 차를 달인다. 火中蛛室魚煎茶
우리 집 이 소식을 뉘라서 알랴 此家消息誰能識
구름은 서쪽으로 날고 달은 동으로 달린다. 白雲西飛月東走
曉峰禪師 "悟道頌"
이 시 또한 일상의 문법을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음미해보면 ‘바다 밑’과 ‘불 속’이라는 구절이 바로 독자를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깊은 바다 속은 육안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불 속에서는 무엇이든 타버리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은 바다 밑과 불 속처럼, 일상적인 통념과 관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관점에서 세계를 직관하라는 것이다. 새로 말하면, 이 세상은 원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가 아니라 모든 개체의 공존과 공생의 화엄세계라는 것이다. 힘센 것이 약한 것들을 먹어치운다는 관점이 아니라, 개체수가 많은 약한 것들이 적은 수의 힘센 것들의 먹이가 되어줌으로써, 크게 보면 모두가 공존의 원리 안에 있다는 것이 이 시의 내용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따라서 본래의 이러한 공존의 화엄세계를 적기적(賊機的) 어법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사슴이 제비 알을 품고, 거미집에는 물고기가 차를 달인다’고 노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