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보내고 고개 돌린 석양의 하늘

마음은 안개비에 아득히 젖네

오늘 아침 안개비 따라 봄마저 가고

빈 가지 쓸쓸히 꽃잎 지며 드는 잠.

離來回首夕陽天

思入濛濛烟雨邊

煙雨今朝春倂去

悄然空對落花眠.          (艸衣禪師)

이 시의 압권은 4행 ‘빈 가지 쓸쓸히 꽃잎 지며 드는 잠’이라 할 수 있다. 님과 이별한 후 슬픈 마음 촉촉이 안개비에 젖는데, 그 비 따라 봄 또한 떠나듯이 꽃잎 지는 광경이 떠오른다. 그런데 주목할 구절은, 이별과 낙하의 情恨이 잠으로 수렴되어 있다는 것이다. ‘꽃잎 지며 드는 잠’에서는 꽃잎 지는 것과 잠드는 것이 하나로 맺혀있어 이별의 잔해가 정리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아니,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순순히 수용하는 超脫의 모습이 그려진다. 會者定離의 이치를 담담하게 인정하는 심지가 보이는 것이다. 꽃잎 지는데, 봄 멀어져 가고, 노을이 지고 있는데, 떠난 님에 집착한들 마음만 부대낄 뿐이다. 이것은 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諸行無常을 실감하는 심사이다. 삶의 마디마다 천지이치가 빈틈없이 녹아있음을 깨닫고 있다. 그래도 어쩌랴, 유정한 인간이 이별의 아픔을 감당하기 쉽지 않으니 안개비에 젖지 않고야 그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으랴. 막막한 공허를 어찌 잠에 맡기지 않을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