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 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어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서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도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설악무산 「나는 길을 잃어 버렸다」

이 시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개념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전도된 모습으로 표출되어 있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듯이 시간을 흘러가는 것으로 의식하고 있는 우리의 생각의 틀이 순간적으로 파괴되는 禪氣가 압권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게서 감자 한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는 구절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思惟 영역은 지나온 경험의 세계와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의 범주에 국한되어 있다. 현재와 과거에 갇혀있는 의식으로 인하여 시간에 대한 우리의 협소한 인식은, 이와 같은 구절에 힘입어 아득한 미래를, 광막한 무시간의 세계를 우리가 만져보기라도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확산된다. 마치 미래를 상징하는 아이한테서 ‘감자 한 알’을 받은 것처럼.

그러므로 이 시가 지닌 덕목은, 강처럼 흘러가는 듯이 보이는 시간의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를 콕 집어내어 광대한 바다 한 가운데로 옮겨 놓은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곧 무한이며 각각의 존재가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중심이라는 것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이것은 육신의 유무와는 상관없다. 티끌이든 하루살이든 암벽이든 간에 색은 공이므로 무한과 통하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가시적 세계라는 것은 비가시적인 무한 세계를 증명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은 ‘바닷물 한 방울에서 바다 전부의 맛을 느끼는 것과 같이, 매 순간에서 영원의 맛을 감지할 수 있는’(마하라지 489) 것에 비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