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에 관하여
요새 같은 웰빙 시대에 고단백, 고 칼로리, 포화 지방산, 콜레스테롤 덩어리인 스테이크를 먹자고 얘기 한다면 좀 들 떨어진 사람 같이 보이겠지만 그래도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인지라 한 마디 안할 수 없겠군요.
전시 오프닝이 끝나고 본격적인 이탈리아 관광에 나서게 되어 베네치아를 거쳐 피렌체로 가면서 전시 기획자인 알렉산드로 베누티의 차를 얻어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저녁 무렵 피렌체에 도착했는데 알렉산드로의 볼일 중 하나인 화가의 집을 찾는데 시간이 좀 걸려서 한 시간 정도 헤맨 후에야 작가의 작업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약간 짜증날 만큼의 시간이 경과했을 때 맥주 한 잔 마시고, 숨 좀 돌린 후에 저녁 먹으러 한 2km 정도 피렌체 시내를 걸어갔습니다.
이 화가는 나이가 80 세 정도 된 피렌체 토박이인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되어 작품을 출품한다고 약간 들떠 이 분은 순박한 모습의 시골 아저씨 같은 푸근한 할아버지 작가입니다. 이 분이 데리고 간 식당은 시내 중심가의 패션 명품들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의 뒷골목 같은 곳인데 그리 차기 어렵지는 않은 곳입니다. 피렌체에서 제일 큰 루이비똥 가게를 지나 마리노 마리니 미술관 방향으로 비스듬히 난 길로 접어들면 왼 편에 바로 있습니다.
식당(Tratoria Marione)안은 꽤 사람들로 북적댔는데 관광지 인지라 세계 각국의 인종을 한데 섞어 놓은 듯한 시끌벅적한 느낌을 주는 그런 식당이었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는 그리 잘 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그런 식당이었습니다. 자리가 거의 없어 카운터와 입구에서 가까운 약간은 번잡스런 그런 자리에 셋이 앉았는데 이 화가 양반이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지라 전시기획자와 둘이서 대충 상의 하더니 주문을 하였고 나는 의례 신경도 안 쓰고 있었는데 샐러드를 먹을 거냐고 물어서 오케이라고 사인을 주고 기다렸습니다. 일단 맛없는 빵과 하우스 와인(레드와인)이 나와서 시장이 반찬인지란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스테이크가 한 접시 나왔습니다. 약 1.3kg정도 되는 티본 스테이크였는데 한쪽에는 등심, 한쪽에는 안심으로 구성되어 먹기 좋게 여섯 토막이 난 상태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두께를 유심히 보니까 T 자 부분은 약 5 cm 정도의 두께이고 기다란 끝 부분은 3 cm 정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렇게 두꺼운 스테이크는 본적이 없었는데....
시카고 갔을 때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키가 되는 드레이크 호텔에서 미시간 애비뉴를 건너 2 층에 있는 100 년이 넘었다는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도 스테이크는 그렇게 두껍지 않았는데 5 cm 이라니 놀랄 노자 이었습니다. 스테이크 안에는 거의 레아의 상태이었는데 그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란. 그래 이것이 진정한 스테이크의 맛이라는 사실을 실감나게 각인시켜 주는 감격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알렉산드로는 일인당 두덩어리의 고기를 먹고도 배가 고팠는지 뼈에 왕창 붙어 있는 살점들을 유심히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신호를 주었습니다. 당신 혼자 다 정리해도 괜찮다고. 그 신호가 끝나기 무섭게 나이프를 들고뼈를 박박 문질러가며 살점들을 도려내기 시작하는데... 옆에서 보기에도 꽤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참고로 알렉산드로의 키는 190 cm 정도이고 살이 꽤 찐 편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밀라노에서 베니스 위쪽은 키가 크고 머리카락도 금발이 많습니다. 북쪽 지방과 피가 많이 섞인 탓에 대체적으로 한 덩치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비해 피렌체 밑으로 로마 나폴리 쪽으로 내려가면 흑발에 키가 작은 사람 들이 많습니다. 때가 메이데이를 전후한 유럽 전체의 황금연휴 기간이라 영국, 독일, 미국 등지에서 온 관광객이 거리에 아주 많았었습니다. 마침 옆 자리에 앉아 있던 독일 여행객 부부가 눈이 휘둥그레져 우리의 친애하는 알렉산드로의 씩씩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열심히 먹던 알렉산드로의 모습이란...
그 다음날 그 식당에 오후 서너 시 경 가 보았는데 아직 오픈하기 전이라 닫혀 있더군요. 식당 사진만 한 컷 찍고 돌아왔습니다. 피렌체에 오면 꼭 다시 와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